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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의 기원설

구들의 기원설(역사적 자료)


온돌의 기원설
  • 서방이입설

    황자명은 희랍 문화권에서 발생하여 만주쪽으로 전래되었다고 주장

  • 산서성 기원설

    중국 서북부 산서성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다시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것으로 수경주의 기록에 의한 것

  • 만주기원설

    만주에서 기원하여 한반도로 전래되었다는 주장

  • 김태양의 부여창시설

    부여족이 창시하여 그 후예인 고구려 즉, 한민족이 2000년전 이어 받았고 그 후 만주에 이주한 만주족, 한족이 이를 모방하였 고 창시지역은 장백산맥지대라는 주장

  • 동호기원설(동이기원설)

    온돌은 동이족의 풍속이고 만주의 금나라가 중국에 전파한 것이라는 주장

  • 손진태, 최남선, 현규환(大原信治) 등의 고구려설

    수경주의 기록은 구당서보다 100년이나 앞선 것이나 관계사는 중국의 문화중심에서 변방이고, 고구려와 접촉이 잦은 위치에 있으며 그 후 600년간이나 문헌상 중국측에는 없었다는 점, 관계사의 구들이 그 절 특유의 것이라는 점, 따라서 일반 민가에는 구들이 없었다는 점 등으로 고구려의 구들이 그 절에 채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므로 고구려가 구들의 기원 발상지라는 주장

온돌의 기원에 대한 소결

  • 한편, 구들의 발생과 그 기원에 대해서는 희랍 문화권에서 발생하여 만주쪽으로 전래되었다는 서방이입설, 수경주(A.D. 500 -513) 기록에 근거해 중국 서북부 산서성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다시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설, 만주에서 기원하여 한반도로 전래되었다는 주장, 손진태, 최남선 등의 고구려 기원설 등이 있으나, 서방이입설의 경우 서양에서는 기원전 100년경에 로마의 건축가 Sergius Orata가 Hypocaust 라는 구들과 비숫한 저온복사난방시설을 고안하여 로마의 Thermae(공 중목욕탕)과 북부지방의 Villa(저택)에서 쓰여지게 되어 독일, 영국 등지의 주택기초에서 다수의 예를 찾을수 있으 나, 아직 Hypocaust와 구들과의 관계는 뚜렷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수경주 기록에 근거한 산서성 기원설은 이미 한반도에 서는 이 시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ㄱ자형 구들유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수경주 이후 600년 동안 중국측 문헌 에 언급이 거의 없지만 고구려에서는 널리 보급되었다는 점을 볼 때, 구들은 우리민족이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것이 중국으로 전파되고 이후 한층 더 발전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수경주의 기록은 이방인에 의한 최초의 발견이지 구들의 발상 에 대한 기록은 아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북만주, 몽고를 중심으로 다량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는데 사실 북만주의 경우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영토였음을 상기하여 본다면 우리 민족이 온돌을 계승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유목민인 몽고인들이 사용한 구들방식으로 간이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구들보다는 좀 덜 발단된 형태이다.
    만주의 캉도 우리의 구들과 견주어 볼 때 형태적으로 덜 발달된 것으로, 캉은 한민족의 ㄱ자형 구들이 그들의 주거양식에 알맞게 개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수경주 기록을 해석해 보면 이것이 조선시대의 방 전체 온돌과 비슷한 형태로 해석되므로, 이에 대한 유적과 문헌자료 를 통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구들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언급이 있으나, 자 세한 자료가 없는 관계로, 이러한 지역의 유적들과 한반도 내에서 발견된 그것들과의 구조적인 특성 분석 및 연대 비교가 이루어 진다면 구들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 좀 더 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